리스크 테이킹 (오리지널스 서평)
세줄요약
- 더럽고 치사해도 존버가 최고
-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이 주는 안정감 무시못해
- 고객 반응 이끌어낼 때까지 출시, 수정, 재출시, ... 무한반복
1. 들어가기 전에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명한 말이라서 아마 다들 들어보셨을 것 같은데요. 위험도가 높은 선택을 할수록 그만큼 높은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저번 포스팅에서도 썼지만, 명확한 성과를 내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테슬라 주식을 사는 사람들의 경우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주가를 보면서 가슴 졸였겠지만, 결국 지금은 이천슬라라는 엄청난 수익성을 보고 있잖아요? (물론 언제 또 다시 내려갈지 모른다는 것이 테슬라의 마력이랄까... 역시 이.세.상.주.식.이.아.니.다)
(테슬라 주식에 대한 이전 글 보시려면 클릭: 2020/08/22 - [경제적 자유] - 저 세상 주식 테슬라 feat. 인간의 상상력)
용감하게 리스크를 지는 결단을 내리고 결국 뚝심 있게 시장을 이겨내는 말 그대로 벤처 마인드의 CEO, 창업자. 이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업가, 자본가의 이미지와도 일맥상통합니다. 마치 노르딕 용사와도 같이 거친 세상의 풍파 속에서 뚝심 있게 닻을 올리는 느낌이랄까요. 과감하게 "신의 한 수"를 두는 바둑가의 느낌이기도 하고요. 얼핏 생각해도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손정의와 같이 유명한 사업가들의 이름이 스쳐갑니다.
2. 오리지널스: 소심한 사업가들의 성공담
그런데 애덤 그랜트의 "오리지널스"는 현대 사회에서는 이렇게 용맹한 사업가들보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소시민과도 같은 소심한 사업가들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는 재밌는 견해를 내놓습니다. 와비 파커라는,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들어 본 안경 제작업체의 창업자들도 사실은 학교에 적을 두거나 취업 활동을 하면서 전전긍긍하던 소시민들이었는데 와비 파커가 잘 되면서 그 때서야 사업가로 방향을 선회한 케이스라고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빌 게이츠도 하버드 중퇴로 유명하지만 사실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매출을 꾸준히 낼 때까지 계속 박사과정에 적을 두고 있었다고 하고요. 구글 공동 창업자들은 심지어 아직까지도 스탠포드 박사 과정에 적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갑자기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이 망하게 되면 학계에 몸 담고 교수가 되려는 생각이라도 있는 걸까요?
생각해 보면 사업을 시작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려울 텐데, 시작하는 데서는 잠시간 용기와 과감성이 필요할지 몰라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심성과 소심함이 더 중요한 것 같기도 합니다. 무리하게 확장했던 카페베네, 망고식스, 다 어떻게 되었나요? 중국의 루이싱 커피는요? 하물며 동네 유명한 맛집들만 해도 줄을 서고 한 시간씩 기다리게 했다가도, 무리하게 2호점을 내고 직원들을 채용했다가 한순간에 파리 날리게 되는 경우는 얼마나 많고요?
모든 일이 그렇듯이 사업에도 흐름이 있습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게 당연히 맞지만, 그 노를 갑자기 1개에서 10개로 늘리고 노 젓는 직원을 10명에서 100명으로 늘리면 다음 하강기 때 버티기 어렵게 됩니다. 사업가는 극도의 주의를 기울이면서, 매출을 충분히 성장시킬 정도로 투자를 하는 동시에 버티기 어려운 순간에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최대한 조직을 효율적으로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부자들 중에 100원짜리도 아끼는 자린고비가 많은 이유도 이것 때문이겠죠.
몇 년 전부터 실리콘밸리에서 유행하고 있는 컨셉인 "실패하고 배우라 (Test and learn)"는 말도 여기와 일맥상통합니다. 작게 시작해서 빨리 실패하고 그 교훈을 받아들여서 다시 수정하고,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점차 고객에게 최적화된 상품을 출시할 수 있다는 말이죠. 처음부터 완벽한 제품은 있을 수가 없고, 여러 차례 조금씩 개선해 나가면서 조용히 입소문을 타고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말이겠죠. 과거처럼 몇 년을 은둔해서 연구한 다음에 "세상을 놀라게 할" 제품을 출시하는 경우는 쉽지 않고, 출시하더라도 반응을 이끌어내기 쉽지 않습니다. LG의 스타일러도 지금 봐도 혁신적인 컨셉의 제품이었지만 그 제품이 대중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지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죠. LG 같이 자금력을 갖춘 대기업도 그런데 개인이나 스타트업이 처음부터 대중에게 인기를 끌 수 있는 제품을 출시하기는 당연히 더 어렵겠죠?
3. 퇴사하기 vs. 존버하기
많은 사람들처럼 저 역시도 조직 생활이 잘 맞지 않는다고 느껴서 "과감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단 퇴사하고 나면 뭐라도 찾지 않을까, 그래도 입에 풀칠은 하게 되지 않을까? 딱 그런 생각을 하던 시점에 애덤 그랜트의 책을 접했고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저는 맨몸으로 파도를 뚫을 수 있는 바이킹 용사가 아닙니다. 세계를 뒤흔들 수 있는 천재도 아닙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런 평범한 우리들이 과연 용맹한 마음으로 세상에 뛰어든다고 해서 갑자기 성과를 낼 수 있을까요? 생각해보면 당연히 어려울 것입니다. 오히려 이미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한 상태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작지만 꾸준한 수익을 달성하고, 고객을 확보하고, 고객의 반응에 따라서 프로젝트 범위를 수정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방안입니다. 그러다가 잘 되지 않는다면 원래 잘 다니고 있던 직장 계속 다니면 되고요.
저는 고민하다가 결국 퇴사를 하긴 했습니다. 지금보다는 내 몸값을 올릴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요. 그런데 퇴사하기 전까지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조용히 전 직장 잘 다녔습니다. 이직 자리가 확실히 정해지고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까지는 모두에게 숨기고 다른 갈 곳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정해진 이후에야 직장에 퇴사 의사를 밝히면서, 모두와 웃는 낯으로 헤어졌습니다. 언제 다시 어디에서 볼지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새로 이직한 이후에도 직장을 다니기 너무 힘든 때가 오면 저는 무단 퇴사 충동에 휘말리다가도 항상 오리지널스의 내용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최소한 레주메에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는 다니다가, 확실히 다음으로 이직할 곳을 마련한 뒤에 퇴사하고, 그 전까지는 바짓가랑이를 잡고서라도 매달리고 있겠다고 스스로 다짐합니다. 구차하기는 한데 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습니다. 심지어 그렇게 구차하게 사는 사람들 중에 세계 순위 안에 드는 부자들도 포함된다는 것이 사실 좀 우습기도 합니다. 손에 꼽는 부자들도 그렇게 안정성에 목숨을 걸고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고 있다는 것이 재밌지 않나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소시민들이 성공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